산사에서 삭발하여 사랑을 낚은 어느 청년의 이야기

이법철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04/16 [11:05]

▲ 이법철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1980년 초 나는 국보 13호 사찰인 무위사(無爲寺=전남 강진군 성전면 죽전리 소재) 주지를 8년간 지냈다. 그 때 어느 날 20대 후반의 부산청년이 찾아와 고뇌어린 얼굴을 들어 간절히 “출가 수핼자가 되고 싶습니다” 간청해왔다. 나는 말없이 청년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수명이 40이 지나면 세연이 다할 요절(夭折)의 상이었다. 나는 그가 불문에 귀의하여 기도와 수행을 잘하면 요절을 면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청년에게 승려가 되기 전 호칭인 행자(行者) 생활을 수락했다. 청년은 꾀가 많은 빛나는 두 눈에 눈물을 보이면서 감사의 절을 올렸다.

 

남녀 모두는 처음 사찰에 들어와 출가하면 행자(行者) 노릇을 하기 마련이다. 낮에는 사찰의 허드레 일을 하고, 밤에는 틈틈이 한문을 익히고, 기초 염불을 외우려 노력하고 절집의 예절을 배운다. 예전에는 행자생활을 3년을 하였다. 그러나 작금에는 1년 정도의 행자생활을 하면, 초급 승려인 사미계(沙彌戒)를 수계하고 예비승이 된다. 그 다음 정해진 년도가 도달하면 정식 승려인 비구계를 받는다. 나를 찾아온 부산 청년은 1년 후 사미계를 수계하게 되고, 곧이어 비구계를 수계하여 정식 승려가 될 수 있었다.

 

사흘 후 청년은 나에게 머리칼을 삭도(削刀)로 박박 미는 즉 삭발(削髮)을 하고 싶다고 간청해왔다. 나는 미소하며 1년 후 사미승의 계를 수지할 때, 삭발할 수 있으니 기다리라고 말해주었다.

 

왜 1년후 사미승이 되는 때, 삭발을 권하는가? 1년기간 행자생활을 하다가 사미승이 되기 전에 많은 행자들이 환속(還俗)의 하산을 하기 때문이다. 행자는 1년간의 행자생활을 하면서 “출가할 결심을 재고하라” 하라는 것이다. 부산 청년은 삭발을 간청하다가 스스로 삭도로 삭발하고 내게 이렇게 말했다. “승려가 되는 초심(初心)을 변치 않겠습니다.” 맹세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각오에 대한 말을 들으면서 칭찬을 해주었다. “초심을 변치 말게나” 그는 옷 색이 정통 승려와 다른 감색 한복에 머리를 박박 깎은 행자가 되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한문을 익히고 기초염불을 외우는 노력을 기울였다. 나는 그 모습을 멀리서 보면서 “불연(佛緣)이로다!” 감탄했다. 역대조사가 걸은 행자생활을 한다고 믿었다.

 

무위사는 호남의 금강산이라는 월출산 남쪽애 자리한 사찰로서 국락보전(極樂寶殿)이 큰 법당이었다. 국보 벽화가 32점이나 있었다. 나는 국보 벽화를 절도범으로부터 수호허기 위해 애를 먹었다. 무위사 밑에는 길옆에 죽전(竹田) 마을이 있었고, 2km쯤 가면 길옆에 늙은 주모가 운영하는 주막집이 하나 있었다. 그 집에는 작은 우체통이 벽에 걸려 있었다. 월출산 밑의 월하리 주민과 월출산을 등산하려는 등산객들이 주막집에 들러 늙은 주모집에서 소주나 막걸리, 맥주를 사먹었다.

 

어느 날 내가 외출했다 걸어 무위사에 돌아오는 데, 주모가 소리 쳐 나를 불렀다. 주모는 고변하듯 말했다. 사찰에 있는 승려 비슷한 청년이 사찰에 있는 우체통을 사용하지 않고, 걸어와 주막집 우체통에 편지를 보내고, 가끔씩 “혼자 숨죽여 울면서 막걸리로 대취하고 어둠속에 돌아간다”고 귀뜸을 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부산 청년이 떠나온 부모님께 편지를 보내고, 속세를 떠나는 것에 슬퍼하는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부산 청년이 조속히 술을 끊고 속세의 부모를 잊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청년에게는 모른 척했다. 과거 나도 어머니를 생각하며 울었으니까.

 

어느 날, 부산 청년에게 20대 중반의 예쁜 처녀가 찾아왔다. 처녀는 행자의 옷과 삭발한 모습을 보고 놀라며 부산 청년의 목을 부여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두 남녀가 대화할 수 있도록 모른 척 했다. 슬피 울던 처녀는 머리를 박박 깎은 부산 청년의 머리를 만지며 결심을 말했다. “당신의 소원대로 우리 결혼하기로 해요.” 부산 청년은 기쁨에 울었다.

 

부산 청년은 무위사에 찾아온 지 30일도 안되어 처녀의 손을 잡고 신사를 떠나는 인사를 네게 해왔다. 청년은 죄송하다는 말을 하려고 했으나 나는 손을 들어 제지하고 두 남녀에게 주례사같이 말했다. “이 세상은 고해이네 두 사람은 인내하고 사랑하는 초심을 버리지 말게나. 그리고. 부처님을 잊지 말기 바라네.” 행자는 처음 절에 들어오면서 입은 옷에 머리는 박박 깎고서 사랑하는 처녀의 손을 잡고 산사를 떠나갔다.

 

나는 그때서야 부산 청년이 속세에 못 이룬 구애를 성공시키기 위해 전략상 산사에 찾아온 것을 깨달았다. 그는 사랑하는 처녀가 청년의 결혼 요청에 거부를 하자 돌연 산사에 들어왔고, 머리를 박박 깎고서 “ 사랑하는 너 때문에 속세를 떠났노라”는 눈물 젖은 편지를 처녀에 보낸 것이다. 처녀는 편지를 보고 경악하여 달려왔고, 두 남녀는 결혼을 약속하고 산사를 떠난 것이다. 나는 시야에서 멀어져 가는 부산 청년과 처녀를 보면서 인생의 행복을 기원해주었다. 그 후 나는 부산 청년과 처녀의 소식은 지금까지 알지 못한다.

 

이 이야기는 80년도 내가 겪은 이야기다. 지금은 美 트럼프 대통령과 북의 김정은이 맞서 공갈을 치다가 평화를 위해 정상회담을 하려 준비하는 2018년이다. 부산청년의 꾀가 많아 보이는 두 눈을 떠올려본다. 관상이 수명이 요절상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하며 일순 처녀의 장래를 걱정했으나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룻밤을 지나도 만리장성을 쌓는 것 아닌가. 또 요절상이라 내가 오판할 수 있다. 그들은 부산 쪽에서 과연 백년해로 하는 각오로 서로 의지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귀여운 아이는 몇이나 될까? 나는 산사에서 삭발하여 못 이룬 사랑을 낚은 꾀 많은 부산 청년이 수명장수하고 돈 많이 벌어 행복하기를 거듭 부처님께 기원한다.

 

*필자/이법철. 스님. 시인. 이법철의 논단 대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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