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 사망 러시아측 추산 사망 250만 명(미국측 추산 200만 명)

한국전쟁의 휴전협상 과정이 주는 교훈

황흥룡 통일교육진흥연구원 원장 | 기사입력 2018/06/10 [08:41]

▲ 6.25     ©브레이크뉴스

 

흔히 6.25사변 혹은 6.25동란으로 불리는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졌던 전쟁을 가리킨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북한과 중국, 국군이 쏟아 부은 화력은 제외하고, 미국극동군이 사용한 양만 대략 폭탄 46만톤, 네이팜탄 3만 2천톤 이상, 로켓탄 31만톤 이상, 기관총 1억 6천여만발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한반도 전역의 생물공동체가 초토화됐다. 러시아측 추산 사망 250만 명(미국측 추산 200만 명), 전쟁미망인 20만, 전쟁 고아 10만, 1천만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또한 북한지역의 공업, 산업, 교통 시설 약 80%가 파괴되었고, 남한 지역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 황흥룡     ©브레이크뉴스

중국군과 소련군 일부가 개입하면서 자칫 한국전쟁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것을 염려한 미국과 중국 등은 1951년 7월 10일부터 휴전협상을 시작했는데, 이 협상은 무려 2년 이상을 끈 후 마침내 1953년 7월 27일에야 협정에 성공함으로써 37개월의 악몽 같은 전쟁을 종식하게 된다.


휴전협정이 2년 이상을 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이 휴전에 결사반대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휴전의 조건으로 북한 지역에서 중국군(중공군) 완전 철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대의 무장 완전 해제, 유엔 감시 하에 단일선거 실시를 주장하여(그는 유엔의 협력 하에 통일 한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고자 함) 휴전협상 진행을 어렵게 했으며, 북한 편에서도 미국과 유엔이 제시한 휴전의 조건인 북한 지역에 비행장 복구 금지, 반공포로의 선별적 귀환, 군사분계선의 위치 등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결국 휴전협정이 장기화되었다.


휴전협정이 2년 이상을 끄는 사이 남북한은 한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개성과 금강산 축선을 중심으로 지리한 전투를 계속했고 이로 인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계속 죽어야 했다.


만일 한국전쟁 당시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협상이 보다 신속하게 그리고 과감하게 진행되었다면 엄청난 숫자의 젊은이들이 죽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국토와 기간 시설의 파괴도 그 양이 대폭 줄어들어 전후 복구에 어려움을 덜 겪었을 것이다.


불과 2개월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 가득했던 전운이 서서히 걷히고 구름 사이로 평화와 공존의 햇살이 파고드는 요즘이다.

 

남북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은, 그리고 한반도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국가의 지도자들은 불필요한 명분, 자존심,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한반도 전체를 공멸과 불행의 나락으로 빠뜨릴 수 있는 어떠한 언행도 조심 또 조심했으면 한다.


그리고 서로 간에 작은 접점이라도 있다면 그걸 지렛대 삼아 과감한 협상과 타협을 통해, 지도자들의 알량한 자존심과 이해관계 때문에 이 땅의 수많은 민초들과 젊은이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결단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한국전쟁의 휴전협상 과정이 던져주는 교훈이 아닐까 한다. heungyong57@hanmail.net

 

*필자/황흥룡. 통일교육진흥연구원 원장.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이 기사를 후원하고 싶습니다.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큰 힘이 됩니다.
후원금은 인터넷 신문사 '브레이크뉴스' 발전에 쓰여집니다.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