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설정 총무원장 사생활 연관설 A여인 “총무원장과 무관”

A여인 “불공 끝나고 부산서 온 처사에게 당했다”...설정 조계종 총무원장과 무관

박정대 기자 | 기사입력 2018/06/12 [16:10]

▲설정 스님(사진). 조계종 설정 총무원장의 아이를 낳은 여인으로 일부 언론에 의해 보도됐던 A여인(김++. 결혼해서 미국에 살고 있는 관계로 이름을 이니셜로 함)이 설정스님과 관련짓는 것은 젼혀 사실이 아니라고 증언한 속기록이 나왔다. 본지는 동학합동속기사무소가 녹취한 A여인의 45쪽 짜리 녹취록(동학합동속기사무소)을 입수했다.    ©조계종

 

조계종 설정 총무원장의 아이를 낳은 여인으로 일부 언론에 의해 보도됐던 A여인(김++. 결혼해서 미국에 살고 있는 관계로 이름을 이니셜로 함)이 설정스님과 관련짓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증언한 속기록이 나왔다. 본지는 동학합동속기사무소가 녹취한 A여인의 45쪽 짜리 녹취록(동학합동속기사무소)을 입수했다.

 

본지가 입수한 A여인의 녹취록에 따르면, 결혼해서 미국에 살고 있는 A여인(1967년 2월18일생)은 지난 5월7일 미국 뉴욕문화원에서 가진 녹음증언에서 자신이 아이를 낳게된 사연을 자세히 증언했다. 그는 사찰에 머물던 시절 김씨라는 처사(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해 임신-출산하게 됐다고 증언했다. 이어 딸을 낳아 입양하게 됐다고 증언했다.

 

A여인은 김씨라는 남자로부터 성폭행 당하던 당시를 “내가 그래도 이제 자주 보던 사람이고, 하룻밤 자다 보면은 노 스님하고 셋이 아침공양도 하고, 예불도 같이 보고 이랬던 사람이니까 저는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그리고 그런 상대에 대해서 남자가 두려움이 별로 없었어요. 믿는 마음이라고 그럴까? 그런데 그래서 방으로 이렇게 들어오는데 내가 그래 가지고 나갈려고 이제, 왜냐하면 보통 제 방 조그마한 건데 거기에서 이렇게 이런 적이 없어요. 그래서 거실이 있기 때문에 그쪽으로 이렇게 나갈려고 하니까 딱 그냥 밀고 그냥, 딱 잡아갖고는 꼼짝달싹도 못하게 하는 거예요. 거기서 내가 딱 느낀. 그때 깨달은 거예요, 제가, ‘아, 이건 뭐가 잘못됐다’ 그래 가지고 이러시면 안 된다고. 제가 지금 밖에 나가서 할 일이 있어갖고 나가야 되니까 나가서 얘기하자고. 그랬더니 사람이 눈빛이 확, 불안해 갖고는 완전히 얼굴이 붉은색으로 변해갖고는 눈이 완전히 살기가 낀 사람처럼 그래 갖고는 달라드는데 저도 조금 그때 몸이 이렇게 살도 없고, 그때는 허리가 27 이렇게 될 때에요. 제가 조금 정신력이 좀 강해요. 그러니까 조금, 그래서 죽으라고 나는 거기서 일단 빠져나와야 되니까 악을 쓰고 거기서는 못 나가게 할려고 땡기고, 막 그러면서 이제 몸싸움이 시작이 됐는데“라고 증언하고 ”결국은 아무리 해도 남자의 힘의 못 이기겠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진짜 강제로 그냥 얼떨결에 그렇게 된 거예요.”라고 회고했다. A 여인은 자신을 임신시킨 남자가 김씨(처사)였다고 확언한 것. 아래 내용은 A여인의 임신과정을 설명하는 증언이다.

 

▲동학합동속기사무소가 녹취한 A여인의 45쪽 짜리 녹취록.  ©브레이크뉴스

 

“그날 이제 법회를 다 마치고 보살님들하고 점심 다 먹고 이제 어떤 보살은 늦게까지 계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그래서 이제 그렇게 있다가 대충 한 4, 5시 돼서 다 갔어요. 갔는데, 이분은 안가고 이렇게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뒤에 조그만 산에 있는데 산에 한 번 올라갔다 와 본다고 하고,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그래서 그 사이에 다른 분들 다 가고 이제 있었는데, 뭐를 이렇게 하다 보니까 방으로 쓱 들어오더라고요. 뭐 스님 어쩌고 하면서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그래도 이제 자주 보던 사람이고, 하룻밤 자다 보면은 노 스님하고 셋이 아침공양도 하고, 예불도 같이 보고 이랬던 사람이니까 저는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그리고 그런 상대에 대해서 남자가 두려움이 별로 없었어요. 믿는 마음이라고 그럴까? 그런데 그래서 방으로 이렇게 들어오는데 내가 그래 가지고 나갈려고 이제, 왜냐하면 보통 제 방 조그마한 건데 거기에서 이렇게 이런 적이 없어요. 그래서 거실이 있기 때문에 그쪽으로 이렇게 나갈려고 하니까 딱 그냥 밀고 그냥, 딱 잡아갖고는 꼼짝달싹도 못하게 하는 거예요. 거기서 내가 딱 느낀. 그때 깨달은 거예요, 제가, ‘아, 이건 뭐가 잘못됐다’ 그래 가지고 이러시면 안 된다고. 제가 지금 밖에 나가서 할 일이 있어갖고 나가야 되니까 나가서 얘기하자고. 그랬더니 사람이 눈빛이 확, 불안해 갖고는 완전히 얼굴이 붉은색으로 변해갖고는 눈이 완전히 살기가 낀 사람처럼 그래 갖고는 달라드는데 저도 조금 그때 몸이 이렇게 살도 없고, 그때는 허리가 27 이렇게 될 때에요. 제가 조금 정신력이 좀 강해요. 그러니까 조금, 그래서 죽으라고 나는 거기서 일단 빠져나와야 되니까 악을 쓰고 거기서는 못 나가게 할려고 땡기고, 막 그러면서 이제 몸싸움이 시작이 됐는데, 결국은 아무리 해도 남자의 힘의 못 이기겠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진짜 강제로 그냥 얼떨결에 그렇게 된 거예요. 그러고 난 다음에 아주 태연하게 그냥 그냥 씩씩 거리면서 그래갖고 나가더니 그냥 차 타고 가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그 순간에도 이제 내가 아, 이러면 안 된다고. 이제 그게 다른 거는 모르지만 나이가 제가 조금 숫기가, 나이에 비해서 되바라지지가 않았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그러니까 이렇게 그런 관계를 안 해도 이렇게 우리 어머니가 옛날에 남자하고 같이 한 방에 자면 안 된다. 정조 관념에 대해서 교육을 엄청 시킨 사람이에요. 사촌집에 가도 숙모가 없을 때는 오빠들하고 한 방에 자면 안 된다. 설사 방이 좁아서 같이 자라고 하더라도 ‘저는 숙모하고 잘래요’ 이정도로 가르쳤기 때문에 저는 정말 남자하고 같이만 있어도 잘못해 갖고 바이러스가 옮기는 식으로, 여고 때까지만 해도 얼마나 멍청해요. 애가 생기는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그런 일을 당할 때는 이거는 애가 생긴다. 무조건 그 생각도 떠오르는 게 큰일 났다 싶은게요. 발버둥 치다 결국에는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이제 그리고 제가 생리가 없었지만 제가 보통 때에 저도 생리도 좀 늦게 시작했어요. 16세 이렇게. 보통 친구들이 보니까 13세에서 14세 이렇게 다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16세 되면서 생리를 했는데 생리를 시작하면서 통증이라고 해야 되나? 생리 때가 되면 너무 아파가지고 옛날에, 이름이 뭐지? 게보린인가 항상 그거를 달고 살았어요. 통증 약을, 때로는 생리불순 있어갖고 우리 어머니가 침 놓는데도 데려가고 한약도 먹일 정도로 몇 개월씩 없다고 또 있고 그랬었기 때문에 저는 그때도 생리가 이렇게 없었는데 조금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좀 겁은 낮지요. 났지만, 그게 없어도 일단 한 번 기다려보자, 뭐 보통 때도 그랬으니까. 그러면서 한 달 두 달 석 달이 이렇게 갔는데 이제 지나면서 조금 3개월까지는 없었던 적이 있으니까 조금 걱정을 하면서도 이렇게 조금 이렇게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지나갔는데 3개월 이상 넘어서니까 겁이 덜컥 나더라고요. 아, 이건 뭔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오늘은 있을려나, 내일은 있을려나? 그러면서 항상 있었는데 4개월 5개월 이렇게 된 거예요. 그런데 그때 내가 승복을 있고 어떻게 산부인과를 갈 생각도 못하고, 그렇다고 누구한테 상의할 수도 없었던 거예요. 내가 속가에 고모님한테 가서 나 이렇게 됐으니까 얘기를 할 수 있겠어요. 내 자존심도 그렇고 창피하기도 하고, 아무튼 누구한테도 상담을, 말을 못 꺼내는 거예요. 못 꺼내고 이렇게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 고민 하다가 이제 5개월 딱 됐다. 이게 뭐가 문제가 됐구나, 이제 감지를 하면서 이제 내가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되냐? 부모님한테 가서 얘기를 해볼까? 그런데 내가 삭발을 안 하고 있던 상태 같으면 얼마든지 학교 때 친구들도 있고, 또 뭐 있잖아요. 뭐 부모님한테도 말하기 쉬운 거예요. 그런데 승복을 입은 상태에서 그런 일 있었기 때문에 노 스님한테도 얘기를 못하는 거예요. 못 했고, 하여튼 그러다 보니까 결국은 그때 당시에 이 보살을 소개해준 보살이 있었어요. 그런데 보살님이 계셨어요. 그 보살님은 우리 절에 오는 원래 보살님이 아니에요. 아니고, 내가 스님이 됐다고 하니까 이제 어디서 있나, 그러니까 내가 한 번 주소하고 이렇게 준 적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 보살님도 한 번 오셨다가 가고, 그런데 그 보살님은 제가 옛날에 이제 어릴 때 중학교 고등학교 이렇게 다닐 때에 그때부터 아는 보살님이세요. 그리고 제가 여고 때도 방학 때 상원사 ... 기도하러 그 보살님은 남해로, 이렇게 남해 뭐 이렇게 보리암이나 이렇게 많이 가시더라고요. 방학이면은 저를 데리고 몇 군데 다녔던 적도 있어요. 그런데 김 씨라는 남자가 처음에 우리 절에 왔을 때에 어떻게 알고 오셨냐고 하니까 그 보살님 이름을 대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보살님 이름이 김숙자라는 분인데 이름을 대면서 그분이 여기 노 스님이 뭐를 잘 아신다고 조금 그분하고 좀 안면이 있나봐요. 그래 가지고 뭘 얘기를 하던 때에 액막음도 잘하고, 뭐도 잘하고 그러니까 그 노 스님한테 가보라고. 그래서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인연이 됐기 때문에 진짜 한 7개월 정도 돼 가지고. 저는 그때 배도 그렇게 많이 안 부르더라고. 그런데 한 7개월 정도 되니까 배가 이렇게, 지금만큼도 안 됐어요. 아주 그냥 배가 더부룩한 거처럼, 7개월 정도 됐는데 더부룩한 그 정도. 그러니까 스님들은 승복을 크게 입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노 스님도 몰랐어요, 그 정도로. 그랬는데 어느 날 이렇게 있다가는 큰일 나겠다, 지금. 그래서 이제 생각난 게 그리고는 그 처사가 발길을 끊었으니까 그 뒤로, 그래서 내가 이제 보살님한테 전화를 해 갖고 좀 얘기 좀 하고 싶은 게 있다, 상의할 일이 있다. 그러면서 그랬더니 그 보살님이 아들이 둘인데 이제 다 결혼하고 그때만 해도 한 70 정도 되신 분이, 71인데 남편분이랑 이렇게 사시다가 남편분이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래 가지고 그 충격으로 기도도 많이 다니시고 이랬던 분인데 그분이 이제 딸이 없고 하니까 맨날 스님 내 딸 하자고 그러면서 나도 딸 있으면 스님처럼 이렇게 스님된다고 그러면 나는 절대 반대 안 한다고. 그런 보살님이 계셔가지고 그래서 내가 그분 소개로 이렇게 왔었기 때문에 아무튼 이제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될지. 그래서 내가 그 분을 찾아가기까지도 저 혼자서 엄청 많은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고 어떻게 해야 되나? 이 보살님한테 말하기까지도 엄청 어려웠죠. 그런데 이제 이렇게 있다가는 더 큰일 벌어지겠다 싶어가지고 이제 그때 찾아와서 사실 찾아갔는데, 그때 참 웃기는 게 여름이었던 거 같은데, 그 주방에서 이렇게 저를 음식을 해주겠다고 막 왔다 갔다 하시는데 제가 도와주러 이렇게 갔었어요. 그런데 그 보살님이 그때 모시를 이렇게 입었어요. 이렇게 입었는데, 스님 살이 많이 찌셨네. 배가 이렇게 옛날하고 다르게 많이 부르네, 그러면서 그러더라고. 나 깜짝 놀랐어요. 그래 가지고 그러니까 왜 말하기가 더 쉽게 돼 버린 거예요. 내가 그런 저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가고 싶었지만, 말 꺼내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랬는데 어떻게 보살님이 진짜 아닌 말로 귀신같이 그냥 알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아니에요, 제가 스님이 경상도 말로 ‘애를 가졌나? 왜 이렇게 배가 부르지, 전에 하고 다르게 살 많이 쪘네, 꼭 애 가진 것처럼’ 그렇게 얘기하는데 내가 아니에요. 말은 그랬지만 가슴이 뜨끔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인사를 식사를 하고 앉아서 이제 이런 저런 얘기, 자기의 살아가는데 힘든 얘기, 이런 저런 얘기 저한테 하고, 이제 하다 보니까 저는 처음에는 다 들어주고, 그 다음에 자기 말 다 끝나니까 저보고 그러더라고요. 무슨 얘기를, 아까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스님 무슨 얘기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내가 자꾸 뜸을 들이니까 ‘뭔 일인데 그렇게 심각해요, 스님?’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보살님 제가 이 얘기를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모르겠다고. 스님 무슨 비밀이 있냐고 그러면서 나는 엄마라고 생각을 해, 엄마라고 자꾸 그렇게 얘기를 하시면서 유도를 하니까 결국은 내가 어렵게 보살님이 보니까 애기 가진 것처럼 진짜 보이더냐고 물었더니 애 농담이지, 농담, 스님이 무슨 얘기야, 얘기, 그러서더라고. 사실 내가 어렵게 사실제가 좀 문제가 생겼다고. 그러니까 “무슨 문제?” 이러면서 상상을 못하는 거야, 그 보살님은, 그래서 제가 사실 이만저만 해서 이렇게 됐다고 하니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됐냐고 이렇게 꼬치꼬치 물으시더라고. 그래서 저도 이제 문제를 해결해야 되니까 그분한테만 사실은 그때 보살님이 소개해서 왔다는 그 처사가 이제 불공 끝나고 이렇게 저렇게 해서 있다가 이렇게 됐노라고. 와서 이렇게 됐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디 사는지 아냐고? 이제 그랬더니 그 보살님이 깜짝 놀라면서 ‘나도 그 사람이 어디 사는지, 집은 몰라’ 그러면서 그 사람이 부산 산다고 이제 그 사람이 기도하러 갔다가 만났나 봐요. 어디 보리암인지 어디에. 그래 가지고 알게 돼 가지고 그 사람이 다른데 기도처 좋은데 있으면 갈 때 자기도 불러달라고 그래 가지고 그런 식으로 해 가지고 어디 한 두 군데 같이, 그분이 차를 운전하니까 그 차 타고 갔다 오고 하면은 편하니까 그렇게 몇 번 가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오래하고, 그래서 그렇게만 알지, 나도 그 사람이 부산 산다는 것만 알지, 무슨 동에서 뭘 하는지 몰라. 그런데 저는 기억에 연수동인지, 연수구인지 그런 기억이 어렴풋이, 왜냐하면 부산에도 아는 스님 비구니 스님이 있어가지고 거기 가끔씩 이제 가면 항상 연수, 부산을 지나가니까 그걸 계속 그걸 보면 그 처사가 이쯤 사나? 이런 동네 이름을 댔었는데. 이런 생각으로 다녔으니까. 그러니까 그런 얘기를 하면서 그 보살님도 이제 잘은 모르신다고 그러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냐? 막 그러면서 부모님한테 제일 먼저 얘기하라고 그러더라고요. ‘노 스님한테 얘기했나?’ 그래서 안 했다고 그러니까 ‘그래, 거기는 하나 마나고, 부모님한테 얘기를 해야지, 부모 형제한테. 어떻게 도움을 하겠냐고’ 그래 가지고 내가 죽어도 우리 부모님한테 얘기를 못한다. 실망하는 것도, 그렇잖아요. 승복을 입고, 엄청난 충격이잖아요. 그러니까 그 말을 내가 못한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굉장히 완고하신 분이에요. 굉장히 엄격하고 우리는 우리 아버지 기침 소리만 들어도 지 자리 찾고 다닐 정도로, 우리 아버지 눈빛만 살짝 이렇게 해도 아주 두려워할 정도로 아버님 엄격하셨어요. 그리고 그래서 이제 도저히 나는 얘기 못 한다고. 그랬더니 그러면 이거를 어떻게? 그런데 그렇다고 보살님 좀 도와달라고, 내가. 그때 눈물을 조금 흘렸어요. 흘리니까 보살님이 그러시더라고. ‘어떡하지? 일단 병원을 한번 가봐야 되지 않겠나?’ 그런데 머리가 어느 정도 조금, 진짜 그렇잖아요. 그래 갖고 보살님 그러시더라고. 스님 내가 말하자면 추레닝복 같은 거지요. 그런 거 내가 편하게 입을 거 하나 사다 줄 테니까 우리 집에서 그러면 같이 있으면 혼자 계시니까 안 그래도, 내가 안 그래도 기도하러 갈려고 했는데 집에를 잘 안 계시더라고. 조금 일주일 있으면 또 기도하러 가시고. 이런 보살님이셨어요. 그러니까 내가 기도하러 가도 혼자 있으면 되고, 또 내가 엄마처럼 내가 해줄 테니까 그렇게 이런 방법밖에 없다, 그러시더라고. 그래서 이제 그 보살님 시장에 가 가지고 사오신 거 입고 한 그러니까 한 달 정도 되니까 머리가 조금 그래도 그래서 의사, 그때만 해도 여름이고 하니까 모자 조금 쓰고, 그래서 처음으로 이제 산부인과를 갔어요. 처음으로 한 번, 초음파를 애가 잘못 나오면 안 되니까 봐야 된다고 그래 가지고. 보니까 의사가 다 이상 없다고 그러면서 다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어떻게 애가 이렇게 클 때까지 병원을 한 번 안 왔냐고? 그러시더라고. 그때 당시에 그것도 다르게 조금 둘러대고, 왔었는데 애가 나올 때까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나올 때는 갑자기 밤에 양수가 터져가지고요, 이머전시 상황이 된 거예요. 그래 갖고 이제 제 가방, 그분이 가져가셨어요?“

 

A여인이 자신의 임신과정을 자세하게 증언한 이 녹취록은 설정 스님(조계종 총무원장) 관련 재판의 증거로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 설정 스님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증언했기 때문. 한편 설정 총무원장은 지난 총무원장 선거과정에서 사생활 문제로 곤혹을 치렀으며 “DNA 검사를 통해서라도 사실을 가리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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