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동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 “DJ곁에 숨어 있었던 큰 책사”

DJ에 대한 평 “일생 내내, 참으로 열심히 공부했던 정치가였다”

문일석 발행인 | 기사입력 2019/07/22 [14:58]

지구는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한다. 워낙 크게 돌고 있어 사람의 귀에 그 소리가 들리지 않고, 눈에 띄지도 않는다. 큰 정치가 옆에서 집사로 일하는 사람들도 그 인간적 규모 용량(用量)이란 게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용인술(用人術)에서 성공했기에 집권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원래 큰 정치가 옆에는 항상 책사(策士)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원래 큰 책사는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법. 지난 21일, 김대중 전 대통령님(DJ)과 동교동-아태재단의 '영원한 집사'라 할 수 있는 이수동(89세)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를 만났다. 그는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로서 내내 DJ결을 지켰다. 필자가 이수동씨를 만난 것은 1985년 미 뉴욕의 맨해튼에서 기자생활을 할 때였다. 그러하니 3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 이수동(89세)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오른쪽)와 문일석 본지 발행인(왼쪽). ©브레이크뉴스

이수동씨는 DJ민주 투사 때부터 DJ를 가장 가까이서 보필한 가신(家臣). 만고풍상을 겪었다. 지장(智將) 밑에 약졸(弱卒)이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2시간 여 만나는 동안 DJ 권부(權府)의 여러 알려지지 않은 막후 스토리를 약간이나마 들을 수 있었다. 막힘이 없었다. 그 기억력, 끝없는 DJ를 향한 조력(助力), 신사스럽다. 지장 DJ란 큰 정치가 밑의 지장 조력자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분은 DJ의 영원한 집사(執事)이었으면서도 숨어있었던 DJ권력의 큰 책사였다. 원래 큰 책사는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1998년 2월25일,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 언론들은 이수동 아태재단 상임이사가 청와대의 어떤 자리로 갈지를 주목했다. 청와대 총무수석 자리로 갈 것이란 예측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DJ는 마지막까지 그를 청와대로 끌어들이지 않았다. 아태재단에 있으면서 국가에 필요한 유능한 인재의 수혈을 돕는 조언자 또는 공기관의 아집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국가의 미래 사업들을  챙기는 창구로 활용했다.

 

DJ정부,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 재임시절에 현대차는 현대그룹에서 분리됐다. 자동차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정부의 특단조치였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동차 산업이 건재한 것은 당시의 현대차 기업분리 정책이 성공한 때문이기도 하다. 이때 이수동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도 도왔다고 한다.

 

이 사업은 청와대 경제 관료들이 반대했던 사업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DJ는 이같이 고급정보를 얻는데 숨어 있는 책사를 이용하기도 했다. 현대차 분리사업을 성공시켰다. 국가의 미래비전을 위한 조처의 하나였을 것이다.숨어 있었던 DJ 책사 중의 한 명이었던 이수동씨는 현대차 분리 사업을 돕는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 정착한 것도 당시 현대차분리가 성공한 데서 찾아야 한다.

 

DJ 곁의 큰 책사 이수동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는 긴 연륜 옆에서 보았던 DJ에 대한 평에서 “일생 내내, 책과 필기구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참으로 열심히 공부했던 정치가”라고 회고했다. 그는 너무 큰 책사라 이제 그의 본 모습이 쬐끔 세상에 드러났다. moonilsuk@naver.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이 기사를 후원하고 싶습니다.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큰 힘이 됩니다.
후원금은 인터넷 신문사 '브레이크뉴스' 발전에 쓰여집니다.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