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혈주의는 반드시 망한다!

“몽골 보르지긴 칭기즈칸의 경우 종족 내 결혼은 일절 없었다”

이재운 소설가 | 기사입력 2020/01/13 [14:47]

 

 

▲ 이재운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고대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재산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4촌 이내 동족결혼을 원칙으로 삼는 왕실을 자주 본다. 12세기에 전 세계를 정복한 몽골 보르지긴 칭기즈칸의 경우 종족 내 결혼은 일절 없었다. 약탈혼이든 중매결혼이든 먼 부족, 먼 씨족과 결혼 동맹을 맺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아마 우리 IT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에 있는 것도 동족결혼을 절대 금지하는 우리 정서에 있지 않나 싶다. 요즘은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면서 장차 유전자 풀이 다양해져 더 좋은 인재가 나오리라고 확신한다.

 

붓다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두뇌를 가진 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붓다의 어머니인 마하마야는 같은 태양족(사캬족 위의 더 큰 개념의 종족)이지만 씨족이 다른 콜리족 출신이다. 그런데 부인 야수다라는 작은 아버지 딸, 즉 사촌동생이다. 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라훌라는 지능이 좀 모자랐던 듯하다. 붓다의 아들이면서 비구들에게 치어 방에서 잠을 못자고 화장실에서 자거나 아침을 먹지 못해 허기진 상태로 아나파나를 하곤 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붓다가 한 방에 두 명씩 자고, 아침을 간단히 먹어도 좋다는 계를 발표한다. 그러고도 라훌라는 거짓말을 잘해 비구들을 자주 골탕 먹였다. 아들이다 보니 붓다의 설법을 많이 들었지만 설명할 줄을 몰라 누가 물어도 몰라요, 몰라요 이러면서 어물거리곤 했다.

 

붓다도 이런 아들이 걱정되었던지 붙잡아다가 옆에다 앉혀 놓고 아나파나를 시키고, 개인과외까지 시켰다. 나중에는 기어이 아라한이 되었지만 그러도록 줄곧 붓다의 근심이었던 모양이다. 라훌라 말고도 난다는 이복동생이고, 아난다니 데바닷다, 아누루다 등은 사촌동생이다. 데바닷다는 악인으로 유명하고, 아난다는 붓다 열반 때까지 아라한이 되지 못해 붓다가 매우 속상해 했다.

 

붓다의 나라 사캬족은 당시 붓다의 아버지인 슛도다나왕이 죽고, 태자인 붓다와 왕자인 난다, 왕손인 라훌라, 대부분의 사촌동생들까지 다 출가해 하는 수없이 남아 있는 조카 마하나마가 왕위에 있었다. 이때 종주국인 코살라에서 결혼 동맹 요청이 왔다. 태양족으로서 자기들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이라는 믿음이 강한 마하나마국왕은 왕비의 딸이 아닌 시녀에게서 난 딸을 보내주었다. 그래도 딸은 딸이다. 이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가 비두다바다. 나중에 비두다바는 어머니가 사캬족 공주가 아니라 시녀에게서 난 옹주라는 사실을 알고 분노, 결국 마필라성을 초토화시켜버린다. 마하나마왕은 결국 손자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재미로 든 예인데, 유전자는 멀수록 좋다. 나는 문예창작과 출신 소설가인데, 살면서 보니 문학과 상관없는 전공을 한 소설가들에게서 깜짝깜짝 놀라는 빛나는 글을 본다. 막상 문예창작과에서 틀에 박힌 문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크게 성공하는 일이 드문 것 같다.

 

우리나라는 유치원 때 피아노 치면 초등학교에 가서도 피아노 치고, 중고등학교, 대학까지 피아노를 치고 그러고도 대학원에서 석박사마저 피아노로 한다. 이런 바보가 없다. 철학으로 피아노 치고, 미술로 피아노 치고, 공학으로 피아노 친다는 걸 모른다.

 

전라도에서 태어나면 민주당, 경상도에서 태어나면 자유당, 이런 문화로는 우리나라 정치가 발전하지 못한다. 노론 집안에서 태어난 놈은 죽을 때까지 노론, 소론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은 죽을 때까지 소론하다가 조선을 말아먹었다.

 

판사가 판사 하는 것, 당연한 것 같지만 아니다. 판사도 일반 직업을 가져보고 다양한 인생을 경험해야 한다. 이혼도 하고, 사기도 당해보고, 이웃과 주차 문제로 싸워보고, 선거판에서 시달려 봐야 한다. 온실 속에서 자라 온실에 앉아 있으면서 바깥세상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무슨 자격으로 재단한단 말인가.

 

불교에서는 수행자를 가리켜 중이라고 한다. 무리 중()이다. 붓다 시절부터 집단수행을 강조했다. 요새는 중이 아니라 독승이 되어 한 사람이 절 한 개씩 차지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파트나 단독주택 지어놓고 토굴이랍시고 자랑하며 들어앉아 있다. 그래서 불교가 죽어간다. 큰 절이라고 가보면 천 명이라도 공부할 수 있는 대도량이건만 주지 한 사람, 목탁 치는 스님 두어 명, 심부름하는 어린 스님 두어 명, 늙어 운신 못하는 스님 한두 명, 끝이다. 그러니 그런 데서 무슨 수행이 있겠는가. 할 일없이 돌아다니는 보살들 차 끓여 바치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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