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마지막 수컷, 작가 천승세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

<황구의 비명> <혜자의 눈꽃> <포대령> <신궁> <낙월도> 등의 작품 발표 '민족문학 진영대표하는 소설가'

이승철 시인 | 기사입력 2020/11/27 [15:58]

한국문단의 가장 유니크한 존재를 꼽으라면, 나는 두 말 없이 하동 천승세(千勝世) 선생님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토록 패기에 넘치던 그 세월들을 넘어넘어 환갑 진갑 흘려보내시고, 고희를 넘어 산수(傘壽)를 맞이하시더니, 오늘 20201127일 새벽 050분에 지상의 닻을 끊어버리셨다는 부음(訃音)을 들었다. 빈소는 서울 이대서울병원 장례식장 10호실. 발인은 29일 오전 630분이라는 "한국작가회의"의 부고가 날아들었다.

 

그는 한국 근현대 최초의 여성작가로 일컬어지는 소영(素影) 박화성(朴花城) 여사의 핏줄을 이어받은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단 8시간 만에 탈고를 마친 최초의 소설 <점례와 소>195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한국문단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며 등단했다.

 

이후 천승세 작가는 핍박받는 약자들의 삶을 다룬 일련의 소설들<황구의 비명> <혜자의 눈꽃> <포대령> <신궁> <낙월도> 등의 작품으로 민족문학 진영을 대표하는 소설가가 되었다.

 

또한 천승세 천승세 선생님은 1964년에는 희곡 <물꼬>가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이어 희곡 <만선>이 국립극장 현상공모에 당선되어 김우진차범석천승세로 이어지는 목포 극작가의 계보를 이어받는 당대를 대표하는 희곡작가가 되었다.

 

▲고 천승세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어디 그뿐인가. 1989년에는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신인작품으로 시를 투고, 주변을 다시 한번 놀라게 하더니 당당한 시인으로 <몸굿>, <산당화> 등의 시집을 펴내기도 했다.

 

말하자면 천승세 선생님은 우리 문단에서 매우 드물게 시, 소설, 희곡 등 3개 문학 장르를 섭렵한 전천후적 작가이자, 오직 그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하고도 개성적인 문체로 한국문단을 살찌운 작가이기도 했다.

 

1회한국연극영화예술상(백상예술상), 2<만해문학상>, 1회 자유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상임고문,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최초의 상임고문이자, 최근까지 <한국작가회의> 고문으로 추대될 정도로 한때 그의 문학적 영향력은 막강했다.

 

내가 작가 천승세 선생님을 처음 만나뵌 때는 아마 1985년 무렵이었다.

 

그즈음 내 또래 젊은문인들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실, 한국작가회의전신)>에 소속되어 활동을 시작했고, 채광석 평론가를 비롯해 <시와경제>, <5월시>, <삶의문학>, <분단시대> 동인으로 활동중인 여러 문인들과 자주 만나 5공의 폭압적 정치상황을 타파하고자 밤새도록 시국관을 토로하며, 울분을 토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채광석 형님은 연거푸 술잔을 들이키다가 몇몇 젊은 문인들을 호출하더니, 다짜고짜 천승세 선생님 집으로 놀러가자고 했다.

 

그 당시 천 선생님은 서울 화곡동 가로공원 근처의 연립주택 2층에서 살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가는 중에 채광석 형은 작가 천승세 선생에 대한 일화 한 토막을 들려주었다.

 

즉 작가 이문구 선생이 경기도 발안으로 이사를 간 후 어느 날 "자실" 문인들을 초청해 집들이를 했는데 열댓 명의 작가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거나하게 술추렴을 했던가 보다. 그런데 이문구 선생님이 키우던 개가 천승세 선생만 보면 따라다니며 무조건 짖어댄 탓에 이런 씨부럴 놈의 개새끼!” 하며 분통을 터뜨렸는가 보다. 그 다음날 선생은 납작 엎드려 그 개를 손볼 기회를 엿보았고, 마침내 그 개의 코를 한입 물컹하게 깨문 탓에 그 견생(犬生)이 거의 실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일화였다.

 

사람이 개를 물어뜯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천승세라는 작가였다.

 

그날 처음 천승세 작가를 대면해 보니 생김새부터가 동물적 본능과 체취가 물씬 풍겼다. 우리시대 문학의 갈 길과 문인이란 대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문학론을 피력할 때는 문자틀 속에 갇힌 책상물림의 그것이 아니었고, 광활한 벌판을 한없이 뛰놀고 다니는 야생마처럼 풋풋함을 느끼게 했다. 간혹 방 천정이 들썩거릴 정도로 사자후 같은 목청은 유리창을 뒤흔들 정도였고, 사모님과 아이들에게 하는 태도는 조선 5백년 가부장의 진면목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더구나 천승세 작가의 그 코밑수염은 특유의 위엄을 느끼게 했고, 간혹 술김에 재미로 여기 보란 듯이 자랑하는 솥뚜껑처럼 튀어나온 삼각권과 오른 팔뚝 위로 불룩 솟아오르던 알통은 나약한 문인들을 조금은 주눅 들게 만드는 묘한 마력을 갖고 있었다.

 

그에게선 마치 야전을 진두지휘하는 사령관 같은 풍모가 있었다. 젊은 날 그가 야전사령관이 되고자 육사를 지망했다는 사실이 짐짓 이해가 될 정도였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시절 우리는 그 어느 해부터 구정(舊正) 초닷새 날이 되면 열일 젖혀두고 연례행사의 하나로 천승세 선생님의 집으로 모두들 집결해야 했다.

 

지금은 육십 줄에 들어섰지만, 당시로서는 새파란 젊은 문인들 수십 명이 떼거리로 몰려가 한 해 동안 쌓인 빚을 갚으러 화곡동의 천선생님의 자택으로 떼몰려갔다.

 

그러다가 1987년경에는 경기도 김포군 월곶면 갈산리로 이사를 하셨기에 우린 그곳으로 집결했다.

 

내 또래 젊은 문인들과 채광석, 이시영, 김남주 등 선배문인들도 참석했다. 그런데 만약 이 생신날 당신께 얼굴을 들이밀지 못하면 한 해 동안 우리는 선생의 고강도 지청구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기에 만사를 젖혀두고 그날의 총동원령을 피할 수 없었다.

 

구정 초닷새날인 천승세 선생의 생신날은 질펀한 술잔치가 온종일 펼쳐졌다. 방안이 떠들썩할 정도로 축제의 시간은 넘쳐 났다. 맛깔스런 솜씨로 소문난 사모님께서 전라도 일품요리로 정성스레 준비한 생일상을 턱하니 마주하면 더없이 흥겨웠다.

 

그때 우리들은 밤새도록 퍼질러 앉아 융융한 문학의 혼불로 그 밤을 꼬박 밝히곤 했다. 그날 천승세 선생님은 특정 후배 문인을 지목하여 질펀한 욕지거리를 퍼붓기도 했지만 그건 아름다운 수사로 느껴졌다.

 

말하자면 천승세 선생님의 생신날은 한해를 새로 시작하는 젊은 문인들의 단합대회날이기도 했다. 빛나는 문학, 올곧은 문학을 해야 하는 자기다짐이 김포 갈산리 서재를 쩌렁쩌렁 흔들어 놓았고, 사모님께서 끊임없이 내오는 갖가지 요리로 포식을 하고 나면, 선생님으로부터 용돈을 타내는 시간이 온다. 당시 젊은 문인들은 선생님으로부터 포커 게임을 처음 배웠다.

 

천 선생님은 고스톱, 포커, 내기바둑 등 잡기 분야에 능한 달인이었지만 그날은 가난한 후배문인들을 위해 일부러 몇십만원씩 돈을 퍼주는 호구로 자청한 탓에 우리들은 그날 선생의 용돈을 받아내는 날이기도 했다.

 

이 생신날의 천승세 선생님의 풍모는 강형철 시인이 표현했듯이 웅혼한 수컷의 기상!”을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또한 <문학동네> 강태형 시인이 말했듯이 천승세 선생님은 우리시대 마지막 포유동물!”이라는 수사가 아깝지 않았던 분이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문학적 위풍과 칼날 같은 정신이 빛을 잃지 않고 살아있되, 압제와도 같은 부성적(父性的) 완강함을 때론 후배들을 한없이 주눅 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위악과 거짓에 함몰되지 않으려는 순정성의 극치를 인간 천승세, 작가 천승세를 통해 발견하곤 했다.

 

천승세 선생님의 아호인 "하동(河童)"이 뜻하듯 여름날 깨 할딱 벗고 천진스레 물장구치는 어린아이의 몸짓처럼 그 예술적 동심(童心)은 이제 문단에서 찾아보기 힘든 하나의 신화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원시적 육림 속에 서성이는 듯한 조선호랑이의 포효, 비극적 침몰의 운명을 안고 폭풍우 속으로 쌍돛을 펴고 떠나가는 어느 가멸찬 어부의 초상(문학평론가 최원식의 말),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그의 아들 오리온을 닮은 사람, 동물적 본능으로 무장된 육체언어의 혼불로 황톳벽 속에 처박히는 단단한 대못 같은 사나이, 그리하여 종갓집 장손의 신실한 자지처럼 벽속 깊숙이 불을 얹고 박히는 그 존재적 표상의 아름다움!

 

한때 선생은 김포를 떠나 제주로, 또한 목포 용당동의 어느 허름한 아파트 한 자락에서 홀로 머물다가 최근엔 강화읍 갑곳리 아파트에서 사모님과 힘들게 노후를 보내고 계신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난 201921, 박정모 시인과 함께 찾아뵌 적이 있었다. , 술도 끊으시고 좋아하던 담배만 피우셨던가.

 

, 그토록 장쾌하게 포효하던 한국문단의 호랑이가 떠나가신 것이다.

 

코로나 시국이 아니라면 <한국작가회의장(韓國作家會議葬)>으로 선생님의 마지막 길을 예우해야 마땅하건만, 조문 가는 것도 버거운 이 시절의 참담함을 어이하랴.

 

허나 만사 젖혀두고 선생님께 술 한 잔 올리며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야 마땅하리라.

 

▲ 고 천승세 소살가(오른쪽)와 이승철 시인(왼쪽).   ©브레이크뉴스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기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with Google Translate.]

 

The last male of our time, author Seung-se Chun, died!

Published works such as <Scream of Hwanggu> <Snowflakes of Hyeja> <Coloner Poo> <Jingung> <Nakwoldo>, etc.'A novelist representing the national literature camp'

-Poet Seung-cheol Lee

 

If I want to pick the most unique beings in Korean literature, I have no choice but to think of Hadong Seungse Chun without saying anything. He passed away his sixtieth birthday over the years that were so full of enthusiasm, and greeted the mountain and water beyond the ancient times, and today, on November 27, 2020, at 0:50 a.m., he broke the anchor on the ground.音). Room 10 at the funeral hall of Ewha Womans University Seoul Hospital, Seoul. On the 29th, the obituary of the "Korean Writers Conference" at 6:30 am on the 29th flew in.

 

As if he proved that he was the son who inherited the veins of Mrs. So-yeong, Park Hwa-seong, who is said to be the first female writer in the modern and contemporary era of Korea, the first novel, Jeomrye and So, was released in 1958. He won the Dong-A Ilbo's New Year's Literature and entered the Korean literature, causing considerable ripples.

 

Since then, Seung-se Chun has become a novelist representing the national literature camp with a series of novels dealing with the lives of the persecuted underdogs- <The Scream of Hwanggu>, <The Snow Flower of Hyeja>, <College Poo,> <Shingung> and <Nakwoldo>.

 

In 1964, Seung-se Chun, Seung-se Cheon, won the New Year Literature of the Kyunghyang Shinmun for the play <Mulko> in 1964, and then the play <Manseon> was elected at the National Theater Prize Competition. He became a representative playwright.

 

Where is that all? In 1989, he submitted a poem as a newcomer in the fall issue of <Creation and Criticism>, and once again surprised the surroundings, and then published a collection of poems such as <Momgut> and <Sandanghwa> as a stately poet.

 

In other words, Seung-se Chun was an all-weather writer who learned three literary genres, such as poetry, novels, and plays, very rarely in our literary arts, and also a writer who gained weight in Korean literary style with a unique and unique style that only he could write.

 

He won the 1st Korean Theater and Film Arts Awards (Baeksang Arts Awards), the 2nd <Manhae Literature Awards>, and the 1st Free Literature Awards, and is the first executive advisor to the <Liberal Astronomers Association> and the first executive advisor to the <National Literature Writers Association>. At one time, his literary influence was so powerful that he was elected as an advisor to the <Korean Writers Association> until recently.

 

It was probably around 1985 when I first met the author Seung-se Chun.

 

Around that time, young literary men my age belonged to the Association of Free Practice Astronomers (Jasil, Korean Writers' Association) and started their activities. Division Era> In order to overcome the oppressive political situation of the Five Balls, I frequently met with various literary men who were active as dominants.

 

But one day, Chae Kwang-seok's brother, while drinking a drink, called several young literary men, and offered to go to the house of Seung-se Chun.

 

At the time, Chun was living on the second floor of a row house near Garo Park in Hwagok-dong, Seoul. On the way by taxi, Chae Kwang-seok hyung told me a snippet of an anecdote about the writer Chun Seung-se.

 

In other words, after the writer Moon-gu Lee moved to Balan, Gyeonggi-do, one day he invited literary writers to do housewarming, but it seems that 10 writers gathered together for a long time to drink. But the dog is Mr. Lee Mun-ku kiwoodeon traveled along only look at Dr. Seung-se Cheon blame Dan unconditional barking "Sons of ssibureol this guy!" Seems to have burst into anger. The next day, the teacher lay flat on his face and looked for an opportunity to take care of the dog, and it was an anecdote that the dog was almost fainted by biting the dog's nose.

 

It was a writer named Chun Seung-se who caused the unprecedented situation of people biting dogs.

 

When I first met Seung-se Chun on that day, I was full of animal instincts and body odor. When I talked about literature about the way to go and what kind of literary man should be in our era, it wasn't that of a desk bite trapped in a letter frame, and it made me feel fresh like a wild horse running endlessly in a vast field. In some cases, the ceiling of the room was shaken, and the window was shaken, and the attitude toward the wife and children showed the true nature of the patriarch in the 500th year of Joseon Dynasty.

 

In addition, the mustache of Seung-se Chun made me feel the peculiar dignity, and the triangle circle that protrudes like a pot lid and the biceps protruding from the top of the right forearm gave the weak literary people a bit of dignity. Had.

 

He had the appearance of a commander in command of the field. It was understandable that he wanted to become a field commander when he was young.

 

In the days of the <Liberal Astronomers Association>, from one year onwards, on the 5th day of the Lunar New Year, we had to lean over and gather at the house of Seung-se Chun as an annual event.

 

Now, they entered the sixty line, but at the time, dozens of young literary men, who were fresh blue, flocked to the herds to pay off the debts accumulated over the year, and flocked to Sensei Chun's home in Hwagok-dong.

 

Then, around 1987, we moved to Galsan-ri, Wolgot-myeon, Gimpo-gun, Gyeonggi-do, so we gathered there.

 

Young literary men my age and senior literary men such as Chae Kwang-seok, Lee Si-young, and Kim Nam-ju also attended. But if we couldn't hold our face to you on this birthday, we couldn't help but endure the teacher's high-intensity request for a year, so we couldn't avoid the total mobilization order of the day.

 

On the first five days of the Lunar New Year, Chun Seung-se's birthday was held all day long. The time of the festival overflowed so that the room was noisy. My wife, who was known for her delicious skill, was very excited when she faced the birthday table she carefully prepared with Jeolla-do a la carte dish.

 

At that time, we would sit all night and light up the night with a fusion of literature. On that day, Seung-se Chun pointed out a specific junior literary man and swears at him, but it felt like a beautiful rhetoric.

 

In other words, the birthday of Seung-se Chun was also the day of the unity of young literary men starting a new year. The self-determination of shining literature and upright literature shook the library in Galsan-ri, Gimpo, and the time comes to earn pocket money from the teacher after eating through the various dishes that his wife constantly brings out. At the time, young literary men first learned to play poker from their teachers.

 

Mr. Chun was a master in the field of catching, such as go-stop, poker, and bet, but that day was also the day when we received the teacher's allowance because he volunteered to deliberately give out hundreds of thousands of won for poor juniors.

 

The features of Seung-se Chun on this birthday were enough to make you feel "the spirit of a grand male!" as poet Hyung-cheol Kang expressed.

 

In addition, as poet Kang Tae-hyung of <Literature Township> said, Seung-se Chun was a person who was not a waste of the rhetoric "The last mammal of our time!"

 

The literary majesty and the sword-like spirit that we could not dare to reach were alive without losing their light, but the paternal stubbornness like oppression sometimes made our juniors endlessly embarrassed.

 

However, we used to discover the extreme of innocence in order not to be immersed in false evils and lies through human Seung-se and author Cheon Seung-se.

 

As Seung-se Cheon's friend "Hadong" means, the artistic concentricity has become a myth that is hard to find in the literary section.

 

The roar of a Joseon tiger as if pacing in a primitive forest, a portrait of a despicable fisherman leaving with a double sail in a storm with the fate of a tragic sinking (literary critic Choi Won-sik), a man who resembles Poseidon, the god of the sea and his son Orion, The beauty of the existential representation of a man who is like a hard nail who is buried in a yellow wall with the spirit of flesh and language armed with animal instincts, and is then set on fire deep inside the wall like a faithful cock of a long-handed family member!

 

At one time, the teacher left Gimpo to Jeju and also stayed alone in a shabby apartment in Yongdang-dong, Mokpo. Recently, after hearing the news that he was having a hard time with his wife at an apartment in Gapgot-ri, Ganghwa-eup, he visited with poet Park Jeong-mo on February 1, 2019. I have seen you. Oh, did you stop drinking and only smoke your favorite cigarettes?

 

Oh, the tiger of the Korean literary who was roaring so cheerfully has left.

 

If it's not a coronavirus situation, it is deserving to honor the teacher's last path with <Korea Writers' Conference Hall>, but how do you think about the horror of these days when it was difficult to go to condolences?

 

However, it would be worthwhile to put everything back and offer a drink to the teacher and see off the last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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曉 史 20/11/29 [06:29] 수정 삭제  
  아~!천승세 선생님 ~!!하필 이때에 가셨습니까~? 구구절절한 명문으로 선생님을 기리신 이승철 시인께 감사와 찬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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