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간조사학술硏, 개구리소년사건 ‘사인·용의자’ 추단할 자료 공개 검토

‘분노조절장애자’가 습득물 놓고 소년들과 말다툼 끝 우발적으로 살해(?)

김종식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 | 기사입력 2021/02/27 [15:42]

 

김종식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     ©브레이크뉴스

개구리소년 사건은 1991년 3월 26일 대구 달서구 와룡산 근처에 거주하는 5명의 초등학생이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가 실종된 후 11년 6개월 만인 2002년 9월 유골로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아이들이 길을 잃고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 반면, 부검을 맡았던 법의학팀은 감정 결과 ‘명백한 타살’이라고 결론 내렸으나 무슨 흉기나 어떤 방법에 의해 사망에 이르게 되었는지까지 규명하는 데에는 한계를 보였다. 대통령까지 나서 사건해결을 독려했지만  1,500여명에 달하는 용의자 신고(조사) 등 ‘많은 설(說)만 남긴 채’ 개구리소년실종사건은 2006년 3월 25일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이 미제사건과 관련 한국형 탐정학술의 메카이자 허브로서의 역할에 진력하고 있는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kpisl, 소장 김종식)는 ‘죄없이 죽어간 소년들과 유족들의 한(恨)을 풀어 주는 일’에 일조하겠다는 일념 하에 40여년 간에 걸쳐 토대를 일군 ‘탐정학술’에 기초하여 2019년부터 ‘11명으로 구성된 부설 연구팀’을 꾸려 ‘개구리소년사건의 발단과 사인, 범인 등’을 유추하는 수십가지 가닥의 ‘상상’과 ‘추리’를 연역(演繹)하거나 귀납(歸納)하는 등의 탐구를 거듭해 온 끝에 최근 ‘개구리소년들은 분노조절장애자의 우발적 범행에 의해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단(推斷)하는 세 가지 가설(假說)을 설정(제시)하기에 이르렀다.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는 이 사건이 공소시효가 완성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가설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방증 자료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방안과 수사기관에만 제출하는 방안 등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특히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는 이번에 내놓은 ‘분노조절장애자에 의한 타살 가능성’이라는 가설을 정립하기 위해 개구리소년사건 발생 당시(1991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 등 ‘현대범죄의 병질성(病疾性)과 우발성·흉폭성’ 등을 이 사건 해석에 깊이 응용하였으며, 논거가 모호한 ‘한낱 얘깃거리나 망상’과의 차별화를 위해 ‘유의미한 방증(傍證)’이 전제되지 않은 ‘막연한 추측’은 철저히 배척한 한편, 전문가그룹(이인기 변호사·전 국회행정안전위원장·3선, 박진우 경찰공제회 이사장·전 경찰청 차장·전 경남지방경찰청장·전 경찰청 수사국장, 박종구 전 tbs 서울방송대표·전 서울지방경찰청 정보관리부장 등)의 자문에도 귀 기울인 등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기 위한 특단의 노력’을 기했다는 점에서 금번의 가설은 개구리소년사건을 처음부터 새롭게 들여다보게 하는 소중한 단초가 되리라 확신한다. 

 

[가설 1 – 사건의 발단, 살해 과정, 살해에 사용된 흉기 등]

 

사건 당일 개구리소년 5명은 산길(山中)에서 일체불상의 남자 1명(청년)과 우연히 조우하여 같은 방향으로 함께 산행을 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산행 중) 누군가 산길 옆 숲속에 버려져(?) 있던 ‘권총과 실탄이 든 가방(또는 야전삽 등 등산용품이 든 가방)’을 우연히 발견하고 ‘00이다’ 소리치자 소년들은 ‘우~와’라며 이에 접근했을 것이다, 이때 일체불상의 남자와 개구리소년들 간에 서로 ‘우리(내)가 먼저 발견했다, 내(우리)가 가져야 한다’로 시작하여 적잖은 언쟁과 비아냥이 오갔을 것으로 추리된다(이를 방증할 유의미한 자료 있음). 

 

이 말다툼에서 나름 민망스러움과 화를 참지 못한 불상의 남자(분노조절장애자?)는 소년들을 ‘죽여버려야겠다’고 작심, 비교적 노출이 적은 한적한 곳으로 유인한 후 자신에게 가장 저항이 심했던 W군(당시 13세)부터 습득물인 ‘권총(?) 또는 야전삽(?)’ 등으로 머리 부위를 집중 강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고(권총 1발을 머리에 대고 발사했을 가능성 배제할 수 없음), 그 다음 곁에서 겁에 질려 있던 소년들을 달아나지 못하게 옷을 반쯤 벗기거나 옷으로 손발을 묶은 뒤 야전삽(?) 등을 이용하여 순차적으로 살해한 후 주변 구덩이에 밀어넣고 돌로 눌러 두었을 것으로 보는 가설이다(이를 뒷받침할 탐구 결과 있음). 

 

특히 습득물(?)이자 말다툼의 대상이 된 권총(?) 등이 즉석 살해 도구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소년들을 살해한 행위 그 자체는 일응 ‘우발적 범행’인 것으로 추단되며, 유골 발굴 시 암매장터에서 발견된 총알(탄두 6종, 145발)은 ‘소년들을 살해 후 권총은 범인이 갖고, 총알은 살해된 소년들에게 내던져진 것(내버려진 것)일 개연성’이 높다(이러한 정황을 유추할 방증 있음). 

 

[가설 2 – 범인의 윤곽, 용의자의 존재형태, 재범 가능성 등]

 

위와 같은 가설에 따를 때 개구리 소년들이 산행 중 우연히 만난 일체불상의 남자는 어디에 사는 누구일까? 일체불상 남자의 얼굴이나 말씨, 말투, 옷차림새(등산복 등에 새겨진 마크나 글자) 등을 통해 아이들이 일견 알아 볼만한 현지인(향토인)이었더라면 소년들이 심한 언쟁을 벌였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 등으로 보아 불상의 남자는 대구·경북권 말씨를 쓰지 않는 먼 외지인(전라도 또는 충청도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당시 사건발생지(와룡산)에는 와룡산을 생업의 근거지로 삼거나 와룡산과 연접한 이웃산으로 가기 위해 지나다니던 ‘(일명)산지기’, ‘산역(山役)종사자’, ‘약초채집꾼’ 등 외지인들이 등산용 지팡이나 작업용 도구 등을 소지하고 심심찮게 드나들었다는 등의 정황으로 보아 다른 용의자 그룹에 비해 이들 ‘산을 생업의 터전으로 삼은 외지인 그룹’ 속에 범인이 있을 확률이 99%에 가깝다는 설이 조심스럽게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이를 뒷받침할 방증 있음). 

 

하지만 화성연쇄살인범 이춘재가 8차 용의선상에서 묘하게 빠져나갔듯(빠졌듯?) 개구리소년 살해범 역시 ‘본건(本件)’ 또는 ‘별건(別件)’ 등으로 한두 차례 조사 대상은 되었으나 ‘허술한 수사로 면죄부(?)’를 받고 지금은 버젓이 용의선상에서 벗어나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범인이 심한 ‘분노조절장애자’였다면 1991년 3월 개구리소년 사건 발생 후에도 어디서건 유사한 살상 등 중범죄를 연이어 더 자행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측면(미국의 힉키 교수의 견해 등)에서 볼 때 유사한 ‘실종(증발)사건’이나 ‘의문사 사건’ 등에 대한 재조사 또는 공조수사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범인’ 한두 차례 조사받고 용의선상에서 벗어나 있을 개연성을 시사하는 정황 자료 있음).

 

[가설 3 - ‘개구리소년 암매장터를 문화일보에 제보한 그가 바로 범인?]

 

‘개구리소년이 와룡산에 한꺼번에 묻혀 있다’고 2002년 9월 25일 문화일보 편집국에 최초 제보한 것으로 알려진 정모(40,가명일 가능성 높음)씨는 ‘범인들에 대해 들은 얘기를 진술하겠다’며 ‘개구리소년들은 6공 정권 당시 강경대·김기설 사건 등 어수선한 사회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정권차원에서 살해한 것’이라 진술(제보)한 것으로 알려졌다(2002년 09월 30일 문화일보). 하지만 당시 정모씨의 제보 상황이나 그의 신원 등을 석명(釋明)한 후속 취재나 보도는 없었으며, 경찰의 제보자에 대한 신원 파악 결과도 제보자 보호라는 원론적 측면에서 제대로 알려진 게 없다. 이로 제보자 정모씨는 문화일보에 불쑥 전화 한번(면담 한번)하고 연기처럼 사라진 셈이다.

 

제보자인 듯, 용의자인 듯 그의 ‘신출귀몰(神出鬼沒)’이 남긴 의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6공이 정권차원에서 살해했다’는 생뚱맞은 제보는 수사의 방침과 방향에 혼선을 주기 위한 간계(奸計)로 보이며, 둘째, ‘범인을 알고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범인들에 대해 들은 얘기를 진술하겠다’고 말한 것은 자신의 신원을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는 ‘유언비어(루머) 제보’ 수준으로 수사기관이나 언론에 부담없이 접근하여 수사의 초점을 간파해 보려는 술책(術策)이였을 것으로 풀이 된다. 셋째, 제보자(용의자?)가 파급력이 큰 메이저 신문사들을 제쳐두고 당시 인지도가 비교적 미미했던 문화일보를 ‘개구리소년 암매장지’ 제보처로 택한 것은 대형언론사에 제보할 경우 심층 취재나 그들의 정보력에 되레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거나 역취재 당할 것을 우려했던 방책(方策)으로 보인다.

 

이후 그가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직관(直觀)과 경험칙(經驗則)을 중시하는 ‘탐정학술’에서는 그 제보자(40세 안팎으로 추정되는 자칭 정모씨)가 바로 개구리소년들을 살해한 범인(가설1 및 가설2, 가설3에 등장하는 일체불상의 용의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이를 뒷받침할 유의미한 방증 있음).

 

개구리소년들의 억울한 죽음! 공소시효가 지났다하여 이대로 넘길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미제사건 추적에 지쳐있을 경찰에 성원을 보내고 있는 한편 ‘수사기법이 시원치 않았던 30년전 그 수사 자료와 그때의 분석결과’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나 편착(偏窄)을 떨치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난망할 것이라는 고언도 서슴치 않고 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해결과정에서 이춘재의 엉뚱한 범행을 뒤늦게 보았듯 수사에 있어 ‘고정관념(선입견이나 편견)’이야 말로 실체적 진실 발견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이 되고 있음을 특히 강조하고 싶다.

 

*필자/김종식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한국사회안전범죄정보학회탐정학술위원장,前경찰청치안정책평가위원,한북신문논설위원,치안정보25년(1999,경감),경찰학개론강의10년/저서:탐정실무총람,탐정학술요론,탐정학술편람,민간조사학·탐정학,경찰학개론,정보론,경호학,공인탐정법(공인탐정)과 탐정업 관리법(등록제 탐정법) 비교론外/탐정제도·치안·국민안전분야 500여편의 칼럼이 있다.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기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with Google Translate.]

 

Korean Civil Investigation Academic Review, publicly reviewing data to deduce "autographs and suspects" in the frog boy case

A “anger control disorder” accidentally murdered the boys after arguing over the findings (?)

-Jong-Sik Kim, Director, Korea Research Institute of Civil Research

 

The Frog Boy case was discovered as remains in September 2002, 11 years and 6 months after five elementary school students living near Waryongsan Mountain in Dalseo-gu, Daegu, went missing after leaving the house to pick up salamander eggs on March 26, 1991.

At the time, the police argued that the children were more likely to have lost their way and died of'hypothermia', while the forensic medical team that was in charge of the autopsy concluded that it was'obvious killing' as a result of the analysis, but it was even investigated by what kind of weapon or by what method the death was caused. There was a limit to it. The President even encouraged the settlement of the case, but the case of the disappearance of the frog boy “with only a lot of theories left”, such as reporting (investigation) of 1,500 suspects, expired on March 25, 2006.

 The Korea Institute of Civil Investigation (Kpisl, Director Jong-Sik Kim), which is working hard on the role of a mecca and hub for Korean detective studies related to this unprecedented case, contributes to ``releasing the Han (恨) of boys and their bereaved who died without guilt. Based on the'Detective Academics', which laid the foundation for over 40 years, with the commitment to do so, a'affiliated research team consisting of 11 people' has been formed since 2019, with dozens of strands that infer the'initiation and death of the frog boy case, the perpetrator, etc.' After repeated explorations such as deducing or inducing imagination and reasoning, they recently suspected that'frog boys are most likely murdered by accidental offenses by persons with anger control disorders'. We came to establish (propose) the branch hypothesis (假說).

The Korean Institute of Civil Investigations and Research is carefully considering how to disclose to the public various evidences supporting the hypothesis and to submit only to investigative agencies in that this case is a case for which the statute of limitations has been completed.

In particular, in order to establish the hypothesis that the Korean Institute for Research and Research has put forward the hypothesis that the'possibility of being killed by a person with an anger control disorder', the pathogenicity of modern crimes such as psychopaths and sociopaths, which were not well known at the time of the frog boy case (1991). (病疾性) and contingency/abusiveness' were deeply applied to the interpretation of this case, and'significant evidence' was not premised to differentiate it from'a single talk or delusion' whose reason was ambiguous. 'Is thoroughly rejected, while expert groups (attorney Lee In-ki, former National Assembly Administrative Safety Committee chairman, 3rd line, Park Jin-woo, president of the National Police Mutual Aid Association, former deputy chief of the National Police Agency, former Gyeongnam Provincial Police Agency chief, former National Police Agency investigation director, former tbs Seoul Broadcasting Representative, former Seoul I am sure that this hypothesis will be a valuable starting point for a new look at the frog boy case from the beginning, in that we have made an ``extraordinary effort to approach the real truth'' by listening to the advice of the head of the information management department of the local police agency, etc.) .

[Hypothesis 1-The initiation of the incident, the killing process, the weapon used in the killing, etc.]

On the day of the incident, it is possible that five frog boys accidentally encountered one male (young man) of a Buddhist statue on a mountain trail and went hiking in the same direction. In the process (during mountaineering), when someone accidentally found a'bag with a pistol and live ammunition (or a bag with climbing equipment such as a field shovel)' that had been thrown away in the woods next to the mountain path and shouted '00,' the boys said,'Ooh. At this time, it is inferred that there must have been a lot of quarrels and resentments between the man of the Buddha statue and the frog boy, starting with'we (I) first found it, and I (we) must have' at this time. (There are meaningful data to prove this).

In this argument, the man of the Buddha who could not stand embarrassment and anger (an anger control disorder?) decided to ``kill'' the boys, and lured the boys to a quiet place with relatively little exposure, and then the W-gun, who had the most resistance to himself (at the time) From the age of 13), he intensively struck the head with a learned item such as a pistol (?) or a field shovel (?), leading to death (the possibility of firing one pistol against the head cannot be excluded), and then by the side It is hypothesized that the scared boys would have been removed half of their clothes, tied hands and feet with clothes, and then killed sequentially using a field shovel (?), and then pushed them into the surrounding pit and pressed them with stones (supporting this. There are findings to do).

In particular, since it is very likely that a pistol (?), which was both a found and an object of argument, was used as an improvised killing tool, the act of killing the boys itself is considered to be an accidental crime. Bullets (6 types of warheads, 145 shots) found in the black market have a high probability that'after the killing of boys, the pistol was held by the killer, and the bullets were thrown at the murdered boys (abandoned). There is evidence to be inferred).

[Hypothesis 2-The outline of the criminal, the shape of the suspect, the possibility of a re-offender, etc.]

According to the hypothesis above, where is the man of the Buddha statue that the frog boys meet by chance while walking? All-in-one Buddha Statues Considering that it is unlikely that the boys would have had a serious argument if they were locals (local people) that children can recognize at a glance through the face, wording, manner of speech, and clothing (marks or letters on the climbing clothes), etc. It seems likely that the man in was a distant foreigner (from Jeolla-do or Chungcheong-do) who did not use words in the Daegu-Gyeongbuk region.

At the time, at the time of the incident (Waryongsan), foreigners such as'(aka) mountain keeper','san station workers','herbage collectors' who made Waryongsan as the base of their livelihoods or walked by to go to the neighboring mountains connected to Waryongsan. It is cautiously persuasive that the probability that the killer is close to 99% in these ``groups of outsiders who made their livelihoods'' compared to other suspect groups, considering the circumstances such as having a mountain climbing cane or tools for work, etc. (There is evidence to support this).

However, just as the Mars serial killer Lee Chun-jae got out of the 8th suspected ship (as if he fell out?), the frog boy killer was also subject to investigation once or twice due to'this case' or'byeolgeon', but'because of a poor investigation. It is impossible to rule out the possibility of being out of the suspect line after receiving an indulgence (?). In particular, if the perpetrator was a severe'anger control disorder', it is similar in terms of the possibility that he has committed more serious crimes in succession, such as similar killings anywhere after the Frog Boy incident in March 1991 (such as the opinion of Professor Hickkey of the United States). It seems necessary to re-investigate the'missing (evaporation) case' or the'questionable case', or a cooperative investigation (there are circumstantial data suggesting the probability of being out of the suspect line after being investigated once or twice for the'criminal').

[Hypothesis 3-'Is this the culprit who reported the frog boy's black burial site to the Munhwa Ilbo?]

 Jeong-mo (40, most likely a pseudonym), who is known to have first reported to the editorial office of the Munhwa Ilbo on September 25, 2002 that'the frog boy is buried in Waryongsan Mountain,' said,'I will state what I heard about the criminals.' It is known that the frog boys were killed at the level of the regime in order to change the cluttered social atmosphere such as the Ganggyeong University and Kim Ki-seol incidents during the 6th government administration' (Multure Daily on September 30, 2002). At the time, however, there was no follow-up or report on Jung Mo's reporting situation or his identity, and the results of the police's identification of the informant were not well known in the principle of protecting the informant. This means that the informant, Jeong Mo, suddenly called the Munhwa Ilbo once (one interview) and disappeared like a smoke.

As if he was an informant or a suspect, there are not one or two questions left by his “Shinchulgwi Mall”. First, the false report that'the six ball killed at the government level' seems to be a trick to confuse the policy and direction of the investigation, and second, not saying'I know the criminal', but'about the criminals.' He said,'I will state what I have heard,' was a tactic of trying to understand the focus of the investigation by casually approaching the investigative agency or the media at the level of'probably non-verbal (rumor) tipping', which does not require revealing your identity. It becomes a grass. Third, the informant (the suspect?) chose the Culture Daily, which had relatively little recognition at the time, aside from the major newspapers with great impact, as the source of information for the ``Frog Boy Buried Site''. This seems to be a measure of fear of being exposed or being counter-covered.

Since then, no one has appeared anywhere who knows who he is and where he lives. In'Detective Academic', which emphasizes intuition and rule of thumb, the informant (self-proclaimed Jeong Mo, who is estimated to be around 40 years old) is the culprit who murdered frog boys (Hypothesis 1, Hypothesis 2, and Hypothesis 3). It is judged to be very likely to be a suspect of all Buddha statues') (significant evidence to support this).

Frog boys' unfair death! Because the statute of limitations has passed, it cannot be passed as it is. Many people are sending support to the police, who might be tired of pursuing unsanctioned cases, and solving the problem is difficult without excessive dependence or bias on the investigation data and the analysis results at that time 30 years ago when the investigation technique was not cool. He is not hesitant to say that he will do it. As I belatedly saw Lee Chun-jae's wrong crime in the process of solving the Mars serial murder case, I would like to emphasize in particular that the ‘fixed idea (prejudice or prejudice)’ is the biggest obstacle to the discovery of the actual truth in the investigation.

*Writer/Jongsik Kim

Director of the Korea Institute of Civil Investigation Research, Chairman of the Detective Academic Committee of the Korean Society of Social Security and Crime Information, former police officers and public security policy evaluation committee member, Korea-North Korea newspaper editorial committee, security information 25 years (1999, captain), 10 years of lectures on introduction to police studies/Book: Detective Practitioner General ,Detective Academic Journal, Detective Academic Handbook, Civil Investigation/Detective Studies, Introduction to Police Science, Information Theory, Security Science, Certified Detective Act (Certified Detective) and Detective Business Management Act (Registration Detective Act) Comparative Studies, etc./Detective System, Public Security, and Public Safety Fields There are over 500 colum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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